(2020년 11월 23일) 이현표 제자의 독후감

요 몇일, 경기여고 51회 동창회에서 펴낸 ≪6.25 70주년과 희수 기념≫집을 읽으며 제가 마치 여섯살박이 아이가 되어 6.25를 겪는 느낌이었어요. 6.25 전쟁 영화와 이런 저런 뉴스도 꽤 보았지만 여섯 살 아이가 직접 경험했던 전쟁이야기는 제게 훨씬 생생하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어요. 이 책이 아니라면 제가 어찌 선생님께서 그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생이별을 하며 불안한 시간 속에서 그렇게 어렵게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요? 또한 이 책은 제 안의 막연한 추측, 그 옛날에 경기여고를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평생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지냈을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리기도 했구요. 전쟁은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배운 자고 못 배운 자고 누구도 가리지 않고 하루 아침에 인간을 인간 이하의 상황으로 내몰게 하며, 하루하루 죽느냐, 사느냐, 헤어지느냐 다시 만나느냐의 절박한 문제 앞에 천당과 지옥 사이를 넘나드는 문제임을 새삼 실감하게 해주었죠. 한겨울에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는 배를 타려고 몰려들던 사람들. 그 와중에 죽음을 보고, 가족들과 헤어지고.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던 사람들. 더구나 그런 일들을 어린 나이에 겪어내야 했으니. 그분들이 일생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도, 아니면 아예 상처를 가슴에 묻고 기억조차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것도 모두 이해가 되네요. 평남 평원군에서 월남을 하신 제 아버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북에 두고 온 가족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으셨어요. TV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 소식이 있을 때면 그리움으로 눈물을 글썽이기는 했어도 어느 순간 다시 만날 가능성조차 접으셨는지 그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으시더군요. 엄마도 6.25 때 피난길을 맨발로 걸어가야했던 이야기를 더러 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 이야기에 공감하며 경청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지금 같으면 잘 들어드렸을텐데.. 책을 통해 엄청난 전쟁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나라가 지금 이처럼 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바로 우리 윗세대 분들의 강인한 생명력, 정신력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쟁의 상처를 이겨내며 다시 삶을 일구어온 힘. 그분들의 기도와 노력. 때로 유학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거나 전쟁의 아픔에서 벗어나려 한국을 떠난 분들까지도 포함해서 힘든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다했던 결과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 말이지요.  

  코로나 때문에 올해 선생님과 동창회원분들의 성대한 희수 기념잔치는 치를 수 없었어도 이렇게 전쟁 경험을 담은 책자를 만들어, 전쟁을 겪지 않는 후배나 자손들에게 기억을 남겨주심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러고보니 코로나가 꼭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아요. 하긴 지나놓고보면 세상에 어떤 일이든 나쁜 점만 있는 건 없으니까요. 아니 힘겨운 일일수록 더 많은 생각거리와 배움을 주는 경우가 많지요. 암튼 선생님 덕분에 잠시 시간 여행을 잘 다녀온 것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의 짧은 엽서 글 마무리에 적혀있던 ‘길벗이 되자’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저희집 거실에 ‘길벗 삼천리’라는 붓글이 걸려있어요. 제가 혼자 살면서도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주변에 ‘길벗’들이 많은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친구 뿐 아니라 후배, 선배, 심지어는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까지 저의 길벗이 되어주시니 그렇게 서로 서로 응원하는 길벗의 힘으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예.. 앞으로도 좋은 길벗이 되어 삶을 나누며 평화로운 마음을 잃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늘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