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9일) 정연선 육사명예교수 - 최영지인
- 이윤경(51)
- 2021.01.1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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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고 51회 졸업생 문집을 읽고
정연선 육사 명예교수
일전에 최영 교수님으로부터 우연히 경기여고 51회 문집의 발간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궁금하던 차에 동창회에서 보내온 전자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많은 남고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마음을 들뜨게 했던 경기여고생들의 당시의 학창생활과 그간의 삶의 궤적을 읽다보니 그 시절 그리도 궁금했던 그 단발머리 여고생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여고생들 앞에서는 그리도 수줍어했던 과거의 저 자신이 생각나 공연히 마음이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춘천고를 다녔는데 매일 아침 춘천여고 앞을 통과해 학교를 가야해서 등교하는 수많은 여학생들과 마주쳐야했고 괜히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땅만 내려다보고 걷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 흔치않은 이 여고생 문집은 본인들에게는 회한의 과거가 되겠지만 칠십을 훌쩍 넘긴 많은 남성들에게는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낭만과 향수의 자극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문집이 의미가 있는 것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것으로 꿈 많은 학창시절이 아니라 우선 책의 반 이상이 전쟁이 발발한 1950년을 전후하여 간신히 초등학교에 취학할 어린 나이에 겪은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집은 6.25전쟁의 참상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 특히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전쟁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어서 당시 전선 후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스럽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또 하나의 생생한 증언이라고 생각됩니다. 6.25 전쟁은 양쪽을 합쳐 3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민족의 비극이었고 그 비극의 한 단면을 경기여고 51회 여러 선생님들이 그 어린 나이에 감당하며 기억하는 악몽이었음을 글들을 통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러 선생님들보다 나이어린 사람들은 그 전쟁을 그렇게 명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저만해도 어머니의 등에 업혀 피난 갔던 얘기는 들었지만 단편적으로 어렴풋하게 생각날 뿐 피난길의 참상이나 전쟁의 모습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박성자(B)님께서 “아름답게 시작된 우리의 유년 시절이 6.25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져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고 하셨는데 이는 51회 여러 선생님들과 같은 세대가 받아야했던 숙명적인 고통을 한마디로 요약한 큰 울림을 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분단이후 6.25를 거쳤지만 지금까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연 그 전쟁은 필요했나요? 무고한 양민들에게 엄청난 희생과 고통만을 안겨주었지 않았습니까. 문집 속의 이야기는 이념이라는 허구와 이유 없이 당해야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어린 소녀들의 참혹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매자님의 옆집 친구 K가정, 아버지는 반동이라는 명목으로 적에게 총살, 오빠 둘은 원수를 갚는다고 국군에 자원했다가 둘 다 전사, 엄마는 정신이상으로 집을 떠나갔다는 이야기는 정말 픽션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너무도 가엾고 참담한 사실이었더군요. 큰아버지 집안의 모든 식구가 지주의 집안이라는 이유로 소작인들에게 집단으로 참혹하게 학살당하고 그 트라우마로 황폐해진 살아남은 가족들, 특히 방황하던 어머니의 행동을 당시는 이해하지 못했던 반백의 딸이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상수님의 고백은 우리 모두를 먹먹하게 합니다. 피난길 화물차 지붕위에서 철로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던 기억, 굴속을 통과할 때 천장에 걸려 떨어지던 피난민들의 모습, 어린 동생을 잃었던 슬픔, 이 모든 모습들이 재미작가 이창래의 한국전 소설 『항복한 사람들』에 나오는 주인공 가족의 피난길 참상을 연상케 합니다.
전쟁의 고통을 가장 아프게 느낀 사람들은 전선에서 죽어간 군인들이었겠지만 사랑하는 남편, 아들, 오빠들을 전선으로 내보낸 남은 가족들에겐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고 보여 집니다. 1.4후퇴 시 열 여덟 살의 나이로 군대 간 오빠, 교복 칼라를 뜨개질로 떠달라던 그 오빠가 신병훈련을 마치고 용산역을 거쳐 전선으로 간다는 기별을 받고 어머니가 주전자에 떡국을 끓여가지고 용산역으로 나갔지만 많은 인파 속에서 찾지 못하고 그냥 떠나보냈던 그 오빠는 끝내 소식 한번 없이 전선고지에서 돌아오지 못했는데 그 전사한 오빠를 생각하며 오열하는 원숙자님의 이야기, 한편 비록 앳된 학도병으로 전선에 나간 오빠는 살아 돌아왔지만 해골같이 변한 수많은 귀향 상이군인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슬퍼하던 지은희 님의 이야기, 또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국전쟁 화보집 『나를 울린 100장면』 에서 곧 전선으로 투입될 새까만 얼굴의 앳된 신병들이 줄지어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대구역전에서 간신히 아들을 찾아내 주먹밥을 쥐어주며 오열하던 어느 초라한 엄마의 모습이 겹쳐지며 눈물이 납니다. 아마도 그 아들 또한 이름 모를 전선고지에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박봉희님, 양계택님, 유명애님, 이경순님, 이애경님, 전신현님, 최양자님, 황경숙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이북에서 월남하실 때의 아픈 기억을 말씀하시고, 강민숙님, 박월준님, 임영희(B)님, 최영님 등의 피난길에서 목격한 참상과 부산에서의 판자집, 돼지우리, 천막교실 등에서의 피난생활을 회상하고 계신데 정말 심금을 울립니다. 이 모든 분들의 이야기는 재미작가 최숙렬 (1937년 생으로 이화여고 출신)이 영어로 쓴 자전적 스토리 3부작 중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과 『하얀 기린의 메아리』의 내용과 너무도 흡사하여 마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형상화해놓은 듯합니다. 전자는 평양에서 서울까지, 후자는 전쟁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피난생활을 묘사합니다. 지주의 집안으로 소련군과 공산당을 피해 전쟁 전에 평양에서 엄마와 함께 남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38선을 넘고 임진강을 건너 가까스로 서울에 당도하였고, 그 후 전쟁이 나서 또다시 부산으로 피난하여 산꼭대기 판자집에서 살며 임시 천막학교에 다니다가 전후 서울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로 여러 선생님들의 경험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분들이 한결같이 회상하는 것은 그런 고통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던 부모님들, 특히 떡 장사하시던 박월준님의 메이퀸 어머니, 수확하고 남은 배추밭에서 배춧잎을 끌어 모아 시래기로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시던 양계택님의 어머니, 네 딸을 남기고 피납된 아빠를 그리워하는 노윤자님, 피난길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엄마 목에 매달려 “거머리”가 되었던 최해림님, 피란 시 한강을 건너다 가족과 헤어졌고 천신만고 끝에 아빠를 다시 만난 이정자(B) 님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립니다. 시련 속에서 가족의 결속은 더욱 굳어지는 법, 피난길의 고통 속에서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가운데 자식에 대해 보여주셨던 엄마 아빠의 희생적인 사랑이 불현듯 다가와 이미 고인이 된 그 분들을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선생님들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모진 과거를 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군요.
그러나 전쟁은 죽음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흥남철수 시 1만 4천명의 피난민을 싣고 부산으로 떠났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새 생명들이 태어났고 그 보다 먼저 원산항에서 레인 빅토리호로 7천여 명과 함께 남하할 때도 새 생명이 태어나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끈질긴 삶은 이어진다는 전신현님의 강한 묵시적 메시지 또한 깊은 공명을 불러일으킵니다. 51회 졸업생들은 6.25를 마치 자신들이 다시 태어난 날로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희수를 맞는다고 했고 “그 후 70년”의 이야기가 또한 가슴에 와 닿고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전쟁의 참화 속에서 다시 태어나 전쟁의 기억은 지워버리고 성장하여 이제 그 어려운 경쟁을 뚫고 경기여고생이 된 51회 졸업생들의 이야기는 인간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제 글들을 읽다보면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싱싱한 글들입니다. 무심코 읽으면 그저 어느 젊은 여인의 단상 같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행로에 대한 회고의 글들이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국내외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신다는 이야기, 퇴직 후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하며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 오랜 해외생활을 통해 밖에서 본 부강해진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귀중함을 깨닫는 내용, 현재와 과거의 삶을 시와 수필로 정리한 글들, 모두가 감동을 줍니다. 글씨를 너무 못써 오히려 유명해진 권애자님, “소다빵” “진주아가씨” “신체육” “이도령” “양깜씨” 등 모든 선생님들의 별명을 지어 부르며 “내 일생에서 가장 즐겁고 희망찼던 그 시절이, 그 풋풋했던 젊은 날이 너무 그립다”던 고인이 되신 김선자님의 학창시절의 추억, 가난하게 살면서도 어린이들에게 “보리밭”을 작곡하여 부르게 하며 꿈과 희망을 키워주셨던 초등학교 시절의 윤용하 선생님을 추억하는 김선희님, 창가에 앉아 지나온 칠십 평생의 아련한 과거를 반추하고 건너야할 회색의 강을 바라보는 유수자님의 짧지만 강렬한 글, 모두 애잔한 감동을 줍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코로나시대의 백신 및 치료약을 찾기 위한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역 일선에서 활동하시는 이윤경님,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바이오푸드 회사를 설립하여 성공하신 김미경님, 한국의 여성 인권을 신장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신 박성자(A)님, 뉴욕월가의 주식분석가로 수십 년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녕애님, 뉴욕의 유명의사로 “카리브해 특급환자”들이 찾아오는 박승자님, 그리고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 국위를 떨치신 여러 선생님들의 활약을 보니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경순님의 “가지 않은 길”처럼 선생님들께서는 현재까지 살아온 삶이 최선의 길이었고 만약 가지 않은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불행의 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매달 콘서트를 함께 가며 감사하며 사시는 김경아님, 바이올린과 사랑에 빠진 고윤자님, 그리고 오늘도 춤을 추고 계실 박연희님, 모두 건강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멋진 노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경기여고 51회 졸업생은 모두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이끌어 가셨던 여성계의 대표자들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오신 여러 선생님들 모두에게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저는 직업군인으로 평생을 군에서 보냈습니다만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관생도들에게도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며 군의 존재는 전쟁의 억지력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해주곤 했습니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의 유명한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 (1831)에서도 이야기하지만 군인이 전쟁을 가장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노회한 정치인들이 탁상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실제 나가 싸우고 죽어야하는 사람들은 군인이니까요. 전쟁으로 해결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 어느 전쟁보다도 엄청난 살육전이 전개되었던 1차 대전의 참상을 목격한 영국의 정치 철학자 G. L. Dickinson이 “인간이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간을 끝낼 것”이라고 말했듯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않됩니다. 문집 속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결말이기도 하구요.
끝으로 아름다운 원고, 모두를 하나하나 감동적으로 읽었지만 지면 관계상 언급을 하지 못한 선생님들의 이야기 또한 많이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한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일생을 살아온 이야기, 자신의 자서전이지요. 모든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그냥 한 권의 책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렇게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집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시는 경기여고 51회 졸업생 모든 분들께 존경의 마음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2020. 11.30)
* 저는 1970년 육사를 졸업하고 2년간 최전방 DMZ에서 소대장 근무 중 육사교수로 선발되어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에서 학사/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Atlanta소재 Emory 대학에서 미국전쟁소설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육사 영어과 교수로 평생 후진을 양성하다가 정년퇴임한 사람입니다.